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 영화 (문단 편집) === 개혁개방 이후 ~ 1990년대 말 === 1977년에 [[마오쩌둥]]이 사망하면서부터 이념적 경직성은 조금 완화되었고, 상업영화는 아니더라도 순수하게 오락을 위한 영화도 제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공산당 및 중공지도부의 탄압이나 과오라고 할 수 있는 [[반우파투쟁]],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의 개인적 경험을 다룬 후일담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 영화들은 이후 5세대 감독들이 계승하여 세계적인 작품을 내놓는다. 1979년 [[덩샤오핑]]이 집권함에 따라 중국은 점진적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하게 되며, 창작의 자유가 어느정도 주어졌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정통성을 건드리거나 현 집권세력을 비판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지만, 그 이외의 비판(공산당도 과오라고 시인한 문화대혁명이나 대약진운동에 대한 비판)은 그럭저럭 넘어간다.] 이 때문에 관제-선전 영화를 만들어 왔던 영화인들이 본격적으로 정부의 입김이 배제된 독자적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 영화를 제5세대 영화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영화인은 [[장이머우]], [[천카이거]]를 필두로 하는 제5세대 감독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중국 자체 내에서 교육받은 영화인이었으며, 대부분 중국 현대사의 질곡을 온 몸으로 겪은 사람들이었다.[* 천카이거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홍위병]]으로 활동했으며, 장이머우는 농장에 내려가 삽질하고 있었다.] 제5세대영화가 세계무대에 데뷔한 것은 1985년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천카이거의 《황토지》(1984)가 출품되어 은표범상을 수상하면서이다. 서방세계는 중국에 선전영화만 있는 게 아니라 예술영화도 있음을 알게되었고, 이때 명작들을 쏟아낸 장이머우, 천카이거 등을 제5세대라고 부른다. 이들은 1966년 [[문화대혁명]]으로 문을 닫았다가 1978년 다시 문을 연 [[베이징전영학원]] 82년 졸업생들이다. 이 당시 여러 명작이 나왔는데, 그 정점은 1993년에 나온 천카이거의 《[[패왕별희]]》라고 할 수 있다. 굴곡의 중국 현대사를 통해 중국 전통 미학을 보여준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음으로서 중국 영화의 수준이 세계적으로 전혀 손색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나온 명작들은 대부분 예술영화로, 세계 각국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을 정도로 수준있는 작품이었지만 상업영화는 매우 부진했다. 여기에 중국 내부의 영화관객수가 크게 줄어나갔는데, 중국에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영화관을 찾으러 온 사람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의 질은 1970년대가 훨씬 뒤떨어졌지만 이때는 오락시설이 위낙에 빈약했고 TV도 별로 보급이 안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영화관객수가 많았다. 이러한 암울한 상황이 1990년대까지도 이루워졌으며 중국이 경제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중국 영화관객수는 매년 줄어들기만 했으며 1인당 영화관람 횟수는 연간 0.5회 수준으로 추락하기까지도 했다.[* 비슷한 시기 한국은 1인당 영화관람 횟수가 1.1회 정도까지 하락했던 수준. 사실 영화관 관람횟수 하락 추세는 사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비슷했다.] 물론 이 당시 중국영화관객수가 많지 않던 다른이유도 있는데 영화관의 매출액이 감소되면서 이를 메꿀려고 영화 표값을 급속히 인상했고 그러다보니 영화 관람자체가 경제적으로 부담되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중국인들이 최소한 재미와 작품성이 보장된 대작이 아닌 이상 [[해적판]](따오판)[* 홍콩영화의 몰락 원인중의 하나가 이 해적판의 범람이었다. 1990년대말 홍콩 뒷골목에 가면 해적판 비디오CD를 1,000원 안팎의 가격으로 살 수 살 수 있었다. 당시 홍콩은 인터넷은 안되지만 PC는 많이 보급되었기 때문에 저런식의 해적판이 많았고, 이는 대륙으로 흘러들어가서 중국의 인터넷 환경이 열악했던 2000년대 초반까지 해적판은 널려 있었다. 한국도 사실 그 당시 불법CD는 없었지만 [[불법 다운로드]]가 극심하긴 했다.]으로 보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싼 푯값이 중국영화의 발전을 저해했던 것은 당연지사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